알천제방수개기(閼川堤防修改記)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산56-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 마애비(磨崖碑).
1707년(숙종 33) 알천(閼川:지금의 경주시 북천)의 홍수에 대비하여 제방을 보수하고 난 뒤 그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경주시 동천동 금학산(琴鶴山) 아래 바위에
새겨져 있다. 바위는 크게 3단으로 이루어졌으며, 높이는 3.5m이다. 하단을 크게 3면으로 나누어 오른쪽과 왼쪽 면에는 관련된 사람의 이름을, 중앙에는 제방을
개수하게 된 경위를 새겨 넣었다. 이 기록은 1980년 11월에 발견되었는데, 그때까지 흙 속에 묻힌 상태로 보전되어 글자가 훼손되지 않고 뚜렷하게 남아 있다.
閼川西注邑基東圯(알천서주읍기동이) / 서쪽으로 흐르는 알천 물살에 읍 동편 제방이 무너졌다.
高擁木石奧自麗氏(고옹목석오자려씨) / 나무와 돌로 높은 둑을 쌓은 것은 고려때이다.
今又脩改歲維丁亥(금우수개세유정해) / 올해 정해년에 다시 고쳐
因勢利導水由古道(인세리도수유고도) / 지형따라 잡은 갈래 전에 흐르던 대로 물길 터주고
磨峨記蹟垂之千億(마아기적수지천억) / 이 바위면에 사실을 적어 길이 후세에 전하려 한다.
知府延安李公書全希天 聖經金命雄任基重贊成以孫汝義徐津金昌道鄭世禎僧渭性董役孫公主之色吏李震溟金始經
지부연안이공서전희천 성경김명웅 임기중 찬성이손여의서진김창도정세정승위성동역손공주지색리이진명김시경
2년 전 사진으로 처음 보게 되었던 그곳 수 차례 오가던 길 옆에 있는 알천제방수개기(閼川提防脩改記) 최근에 보고 알게 되었지만 왕복 2차로 차량 통행이 많은곳
마땅한 주 정차 공간이 없는 곳이었다. 시간이 여유롭던 어느 휴일날 오후 보문호 주변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오는 방향 이 근처에 우회전 차로가 짧게 표시된
공간에 잠시 주차를 하고 처음 둘러보게 되었다.
촬영일: 2014년 11월 16일 (세번째 일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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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1980년 11월 경주시 동천동(東川洞) 북천(北川) 북안에서 경주사적관리사무소(慶州史蹟管理事務所)에 의하여 조사되었는데, 자연암석
3면에 해서(楷書)로 음각되어 있다. 본문 중의 정해년(丁亥年)은 조선 숙종(肅宗) 33년(1707)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모두 90자(字)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쪽으로 흐르는 알천 물결에 읍성 동편 제방이 무너졌다. 나무와 석축으로 높다랗던 둑은 고려 때에 쌓은 것이다.
금년 정해년(1707)에 다시 개수하여 지형 따라 잡은 물 갈래는 옛길대로 물을 터 주었다.
(이에)여기 암면에 사실을 적어 길이 후세에 전하려 한다. 부윤 연안이공(인징)이 쓰고 전희천·권성경·김명웅·임기중이 함께 도왔다.
손여의·서진·김창도·정세정과 스님 위성이 공사의 책임을 맡았으나 실지로는 손여의가 주관하였고, 감독과 관리는 이진명·김시경 등이 하였다."
(이근직, 1998, 경주의 문화유산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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