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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운흥동당간지주 (安東雲興洞幢竿支柱)

도랑도랑 2014. 5. 1. 20:08

 

 

안동운흥동당간지주 (安東雲興洞幢竿支柱)

경상북도 안동시 운흥동(雲興洞)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0호)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거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시켜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가 속해 있던 절의 이름은 알 수 없으나 동쪽에 있는 동부동5층전탑과 같은 절의 유적으로 보인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파손된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아무런 조각을 새기지 않아 간결하며, 기둥 사이에는 당간을 꽂는 둥근 받침돌이 놓여 있다. 기둥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 놓았다.


윗부분의 일부가 파손되어 완전한 모습은 아니나 소박하고 간결한 모습이며,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2014년 4월 27일 아침 식사 후 전 날 모였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돌아가고 나혼자 안동으로 향했다. 먼저 임하면 석탑 3기를 돌아보고 한 곳이 빠진것 같은 느낌은 들었지만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그 빠진곳이 바로 안동임하동오층석탑이었고, 안동역 부근 인터넷검색에서 역 뒷 쪽이란 내용을 참고로 추차할곳을 찾느라 두 바퀴를 돌아도 그자리가 그자리였다. 역 앞 안동호 방면 우측에 잠시 주차를 하고 역광장을 지나 100여 미터쯤에 전탑 하나가 보였다. 그곳이 바로 안동동부동오층전탑이었고 나무 울타리 사잇길로 들어서니 생각하지 못했던 운흥동당간지주도 함께 나타났다. 울타리 사잇길 좌측에 작은 안내판 하나가 있었는데 동부동오층전탑 연리지 라고 적혀 있었다.

 

 

 

안동역사(역사) 옆에는 작은 공터가 있는데, 거기에는 신라시대에 세워진 오층전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오래된 벚나무가 서 있다.

해방이 되기 이태 전쯤, 안동역에는 한 젊은 역무원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느 겨울 밤 열차를 보러 나갔다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을 읽고 플랫폼에 쓰러지는 한 처녀를 발견하고 역무실로 업고와 정성스레 간호해 주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서울에서 공부를 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차 귀향을 하던 처녀였다.

며칠 뒤 처녀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 그 역무원을 찾아왔었고 그렇게 만남은 시작되었다.

당시 역 주변에는 두 사람이 만나서 시간을 보낼 만한 이렇다 할 장소가 없고 해서 둘은 늘 오층 전탑 주위를 거닐거나 당간지주에

기대앉아 사랑을 나누고나 했다.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약속하며 벚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그러다 이년 뒤 쯤 역무원은 일본 고등계 형사들에게 쫒기는 몸이 되었다. 사실 그는 비밀 독립운동단체인 ‘조선독립단’의 단원이었는데 일본 육군기념일을 기해 안동경찰서를 기습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가 사전에 정보가 새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이왕 쫒길 바에는 만주로 건너가 제대로 독립운동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워낙 화급하게 쫒기는 몸이라 처녀를 만나 자신의 뜻을 전할 경황이 없었다. 그래서 동료에게 처녀가 걱정할 것을 우려해 ‘같이 심은 벚나무가 죽지 않는 한 자신에게도 별 일이 없을 테니

걱정말고 잘 지내고 있으라’는 말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만주로 떠났다.

 

며칠 후 그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처녀는 말없이 눈물만 흘렀다. 그리고는 수시로 찾아와 전탑앞에 와서 간절히 기도를 하고 벚나무를 보살폈다. 그해 여름 광복이 되었지만 독립운동을 하러 만주로 떠났던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6.25 전쟁이 일어나 그녀 역시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는 제일 먼저 안동역부터 찾았다. 벚나무의 생사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기적처럼 역에는 그 역무원이 와 있었다.

 

만주에서 독립군 생활을 하던 그는 해방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북한군에 편입, 장교로 지내게 되었고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 안동

까지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군 반격으로 다시 북으로 후퇴할 처지가 되었지만 벚나무를 보고는 그녀 생각에 도저히 떠날 수가 없어 그만 국군에 투항을 했다. 그리고는 전쟁이 끝난 후 이곳으로 찾아와 행여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했다. 그녀는

너무도 기뻐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제 그 두 사람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심어놓은 벚나무는 그들의 애뜻한 사랑을 말해주려는 듯 연리지처럼 밑둥치가 하나로 붙은 채, 오늘도 푸른 하늘을 향해 뻗치고 있는데, 요즘도 안동역을 찾는 젊은 연인들은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벚나무를 찾아가 그 앞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맹세하곤 하기도 한다.

 

 

 

 

 

 

 

오층전탑과 당간지지주가 있고 연리지로 불리는 벚나무 앞에는 이런 석물 두 개가 놓여져 있었다.

 

 

 

도로에서 역 광장 부근 택시승강장 근처 골목길이 하나 있었는데 차단기가 보여서 들어갈 생각을 할 수가 었었기 때문에 두 바퀴나

돌았지만 도로변에 주차하고 역 광장을 지나 오층전탑앞에 서고 보니 이 건물의 바로 뒷쪽이며 주차장이기도 했던것이다. 골목길

차단기 앞 우측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주차장이었던 것이다.

 

 

 

                                                                                                                                                           촬영일: 2014년 4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