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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4국 10일 / 콜로세움 외관.포로 로마노

도랑도랑 2018. 5. 6. 19:10



콜로세움(Colosseum)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Amphitheatrum Flavium)'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본래는 비공식 이름이었던 콜로세움(Colosseum)의 유래에 대해서는 원형 경기장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대한 청동상(Colossus Neronis)과 

명칭이 혼동되었다는 설과 '거대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콜로살레(Colossale)와 어원이 같다는 설이 있는데 

중세에는 그 자체가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과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으며,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에는 신도들을 학살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피지배계층의 관점이나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다소 잔인한 측면이 있으나 고대 로마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은 경기를 보며 

일체감을 느끼고 그 내용을 즐기는 하나의 공공 오락시설이었다.


한편, 로마 정치가들에게 원형경기장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고 화합을 도모하며 

때로는 로마나 귀족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로마의 마지막 비기독교인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272~337년)가 312년 밀비오 다리 전투에서 

막센티우스에게 승리한 것을 기념하고자 세워졌으며, 팔라티노 언덕과 콜로세움의 중간, 당시 승리의 환호성을 올리던 

군인들이 점령했던 비아 트리움팔리스에 자리 잡고 있다. 개선문은 영원히 남을 기념비로 세워지며, 정치적 파워의 과시로 보이기도 했다. 

개선문 건축의 전통은 그 후 수세기를 누리며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 1세가 세운 파리의 개선문으로까지 이어진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은 특히 그 기하학적 비례로 눈길을 끈다. 

하단부는 대리석 덩어리를, 상단부는 대리석으로 고정한 벽돌을 재료로 삼았다. 

높이 20미터, 너비 25미터, 폭은 7미터에 달하며 모두 세 개의 아치가 있는데 중앙 아치는 높이가 12미터, 양옆의 아치는 7미터이다. 

각각의 파사드는 누미디아의 황색 대리석으로 만든 코린트 양식의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제정 로마 시대부터 하나씩 교체되었다. 

중앙 아치 위의 스팬드럴은 승리를, 양옆 아치 위의 스팬드럴은 강의 신들을 묘사하고 있다. 

아치의 양옆에는 지름 약 2.4미터의 메달리온 두 개가 보이며, 최상단부는 직사각형의 얕은 부조와 조각들로 장식했다. 

원래는 조각의 수가 더 많았다. 예를 들면 아치의 북쪽과 남쪽에 있는 얕은 부조는 한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생애의 에피소드를 

묘사하고 있었으나, 훗날 아우렐리우스의 얼굴에 손을 대 콘스탄티누스 1세처럼 보이도록 고치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h of Constantine)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이탈리아 수도 로마 도심에 있는 고대로마 유적 테베레 강 동안, 테르미니 남서쪽 1.5km에 있음. 

팔라티노 언덕과 카피톨리노 언덕 사이의 오목한 곳. 고대로마 공화정 시대의 중심지로 고대 로마 군도(軍道)의 원표가 있음.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인들이 시민생활의 중심지로 생각하던 신전과 공회당 등 공공 기구와 함께 일상에 필요한 시설이 있는 곳이다. 

팔라티노 언덕 주변에는 한때 원주민들이 수장 묘지로 사용하던 늪이 있었다. 

기원전 6세기에 에트루리아의 왕 타르퀴노 프리스코가 하수처리장을 시설하고 이 늪을 메워버리자 공회장터 역시 매몰되었는데,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가축 방목지로 사용되었기에 '우시장'으로 알려져 있었다. 

발굴작업이 괄목할 정도로 진행된 다음 이 공회장은 엄청난 신전과 공공건물, 그리고 아치형 건물과 상점이 나란히 이어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건물들을 치장하고 있는 조각상들도 무수히 널려 있으나 안타까운 것은 이 석상들 중 온전한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놓여 있는 곳곳에 새겨진 역사의 의미는 대단하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인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곳의 건물들은 

모두 동시대에 함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상세하게 파악하는 것은 힘든 작업이 될 수 있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






포로 로마노(Foro Romano)



일정 중 제 2일째 선택관광: 로마벤츠 투어(1인당 59유로) 후 석식

▶로마야경 투어 천사의 성 라보나 광장 도보 이동



사람들이 모여있는 저곳에서 바라본 야경 투어 즁 저기에 있을땐 몰랐었는데, 사진 정리 중 찾아보니 정면의 이 건물은 로마의 대법원이었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광장으로 포폴로 광장, 스페인 광장, 캄피돌리오 광장과 함께 로마 4대 광장으로 꼽힌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전차경기장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광장은 길고 좁은 타원 형태이다. 


나보나 광장에는 성 아그네스 인 아고네 성당을 비롯해 로마 바로크 양식의 피우미 분수(Fontana dei Fiumi), 

넵튠 분수(Fontana di Nettuno), 모로 분수(Fontana dei Moro)가 위치하고 있다. 


이탈리아 조각가 베르니니(Bernini, 1598~1680)가 1651년 만든 피우미 분수는 나일강, 갠지스강, 라플라타강, 도나우강 등 4대강을 

신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였으며 이집트에서 약탈한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피우미’는 이태리어로 ‘강’이라는 의미이다. 넵튠 분수는 넵튠이 문어와 싸우는 형상을, 모로 분수는 이디오피아인이 돌고래와 싸우는 형상을 하고 있다. 

나보나 광장은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노천카페가 들어서 있고 여러 가지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이나 화가들이 활동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의 노천카페





로마 대법원 정면 테베레강의 다리위에서 바라다 본 야경

여기에서 성 천사의 성(Castel Sant'Angelo)은 보이지 않았지만 좌측 강변을 따라 내려가면 보이는 곳이었다.






                                                                                                                                                      촬영일: 2018년 4월 27일(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