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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곶 둘레길따라

도랑도랑 2012. 7. 13. 15:48

 

호미곶 바닷가 길을 돌다가 보면 길 옆에 세워진 청포도 시비를 볼 수가 있다.

새삼 스럽게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는 왜 영일만 이곳 바닷가 세워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64" 이육사!

이 시비는 2009년 12월 29일 오후 2시 포항 호미곶 광장에서 정장식 포항시장과 빈남수 한국문인협회 포항지부장,

문협회원 등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비제막식이 열였다.

육사 시비는 포항시가 3천5백여만원을 들여 새천년 해맞이 행사가 열리는 호미곶 광장에 가로 3m, 세로 1.2m,

높이 2.5m 규모로 건립 했고, 대리석과 자연석으로 건립된 시비의 조형물은 영남대학교 미대 홍성문교수가 제작하고

비문은 지역에서 활동중인 작가 손춘익씨가 지었으며 글씨는 서예가 솔뫼 정현식선생이 썼다고 한다.

한국문인협회 포항지부 관계자는 "이육사의 명시 청포도가 우리고장 동해면 일월동에서 시상을 떠울려 씌어 졌음을

널리 알리고 문화의 명소로 가꾸기 위해 해맞이 축전 행사장소였던 호미곶 광장에 시비를 세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육사!

경상북도 안동군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진보)이며, 퇴계 이황의 14대손이다.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웠다.

1925년 10대 후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형인 원기, 동생 원일과 함께 처음 투옥되었다.

 

이육사라는 필명은 2가지의 사연들이 전해져오는데 하나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딴

 '二六四'에서 나왔으며,이육사(李陸史)로 고쳤다하는 설이며,

또다른 설로는 이육사가 일본에 대하여 저항운동을 하다가 잠시 검거를 피하기 위해 사촌형이 있는 포항으로 가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의 사촌형 이종형도 역시 한학자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육사가 어느 날 사촌 형에게 "형님, 저는 "戮史"란 필명을 가지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라는 의미였다.

당시 역사가 일제 역사이니까 일제 역사를 찢어 죽이겠다.

즉 일본을 패망시키겠다는 의미였다. 그의 사촌 형은 잠잠히 있다가 대답했다.

"그래, 네 뜻은 가상하지만 그렇게 쓰면 네 시를 발표도 못하고 당장 잡혀 간다.

하지만 '陸'字를 쓰라. 이 字는 우리 나라 옥편이나 일본 한자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중국 자전에는 '戮'와 같은 의미로 쓰이니 이렇게 하면 너의 뜻도 이루어지고,

일본놈들이 모를 것이 아니냐"라고 충고해 줬다.

이것이 오늘날 <이원록>이 <李陸史>로 불리게 된 사연이다라는 설이 또 있다.

또다른 필명으로 이활(李活)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