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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기행(南道紀行) (4) 만복사지

도랑도랑 2012. 7. 9. 08:56

2012년 6월 30일 예정했던 남도기행 마지막 날이었다.
전날밤 늦은시간에 남원에 도착하고 보니 거기가 어디인지 종잡을수가 었었다.
아침 숙소에서 나와 시내로 이동 하던 중 거긴 고속버스터미널 부근 이었던 것으로 보였고
어디에선가 들어 본 듯 사진으로 얼핏 구경은 해 본 듯한 만복사지 옆을 지나게 되면서
잊었던 사람을 만난듯이 뜻밖이라는 생각과 함께 만복사지가 남원에 있었던가 하면서 돌아보게 된 곳이다.

 

 

전북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통일신라~조선시대의 절터이다.

 

사적 제349호. 지정면적 4만 86m2. 기린산을 북쪽에 두고 남쪽은 넓은 평야를 앞에 둔 동산에 있다. 《용성지》에 따르면

통일신라 후기에 도선이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었으나, 현존하는 유구는 고려 문종(1046~1083) 이후의 것이며,

1979~1985년 전북대학박물관 조사팀이 발굴조사하였다.

 

가람의 배치는 1탑 3금당식으로, 본탑을 중심으로 북 ·동 ·서에 각각 금당이 있고 그 북쪽과 남쪽에 강당 ·중문이 있다.

이런 배치는 특히 고구려의 1탑 3금당식과 다른 차이점을 보이는데, 즉 서쪽 금당터가 북 ·동 금당터보다 규모가 크다.

특히 이 절터는 고려 문종 때 창건된 동탑서전 가람배치와 조선시대의 1탑 3금당 가람배치가 중복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만복사에 대한 《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상 기록과도 일치되어 가람배치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만복사지5층석탑(보물 30)과 통일신라 후기~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만복사지석불입상(보물 43), 만복사지석좌(보물 31),

만복사지당간지주(보물 32), 석인형 등이 보존되어 있다.

 

 

 

 

 

 

 

 

 

 

 

 

 

 

 

 

 

 

 

 

 

 

 

 

 

 

 

 

 

 

 

 

 

 

 

 

 

 

 

 

 

1979년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만복사지를 발굴하기 시작하여 1984년에 대략 사찰의 중요부만 발굴 조사를 완료하였다.
이 발굴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만복사지는 일탑삼금당식(一塔三金堂式) 가람 배치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동안 만복사지의 가람 배치는‘동탑서전식(東塔西殿式)’이라고 보았던 학설은 『동국여지승람』과 『용성지(龍城誌)』의 두 기록을

근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기록은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고려 문종 때의 만복사 가람배치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만복사 창건 당시의 건물들이 퇴락된 뒤의 현상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 발굴 조사 결과 실제 고려 문종 때 만복사는 일탑삼금당식 가람 배치였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발굴 조사시 많은 건물의 흔적을 찾았으며 청자와 백자, 많은 기와가 출토되어 고려시대 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다.

오층석탑(보물 제30호), 불상좌대(보물 제31호), 당간지주(보물 제32호), 석불입상(보물 제43호) 등이 현재 절터 내에 남아 있다.

 

아침부터 잔뜩 흐려있던 날씨 광한루원을 돌아보고 있을땐 한바탕 퍼붓고 난 이후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사진찍기에는 좋지않은 환경이었으며, 만복사지를 돌아나와
골목길 넘어 고가 한 채 비석이 보이는 마당으로 들어서고 보니 양사재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다.

 

 

 

 

 

 

 

 

 

양사재(養士齋)
양사재(養士齋)는 선비들에게 매우 영향력 있는 교육 공간으로서 선비를 기르는 집이다.
서당공부를 마친 재능있는 청소년들이 모여 생원, 진사시험 공부를 하던 곳이다.
남원의 양사재는 남원향교의 소유로 왕정동에 따로 자리하고 있으면서 향교보다 낮은 선비들이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촬영일: 2012년 6월 30일